9월 26, 2021
달창저수지와 슬픈 개
사월 중순, 가창 댐에서 현풍 달창저수지로 가는 구절양장의 길 주변 풍광은 연두색 수채물감을 풀어 놓은 듯하였다. 오랜만에 자취를 감춘 미세먼지 덕분에 빛나는 달창저수지 삼거리에서 언제나처럼 저수지가 아련히 보이는 비슬산 자락 언덕에서 아내의 야생화 촬영을 위해 곽천대산로 연당리 방면으로 운행하다가 도로 중앙선으로 비틀거리듯 가는 개 한 마리와 부부로 보이는 사이클 일행을 발견하고 서행하면서 뒤따라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뒤따라오던 차가 추월하였지만 개는 차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하였고 반대편 차선으로 달려오던 트럭이 경적을 울리자 가까스로 도로 갓길로 가서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적인 아내의 판단대로 개는 정상이 아닌 듯하였고 위급할 정도로 병들거나 허기진 상태로 보였으나 차를 세울 마땅한 장소가 없을 뿐만 아니라 들개일 경우 다시 만날 기약이 없고 광견병 등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차창으로 하나밖에 없는 초코파이 빵을 던져주기로 하였다.
그즈음 도로의 경사 때문에 전력을 다하나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클 부부도 보호할 겸 비상등을 켜고 차를 정차시킴과 동시에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응급 결에 큰소리로 ‘야 이리 와’ 하고 외치자 신기하게도 개가 도로를 가로질러 조수석 창문 쪽으로 다가오자 아내가 미리 개봉한 빵을 던졌고, 동시에 다시 서행을 시작한 차량의 백미러 속으로 게걸스럽게 빵을 먹는 개가 보였다.
아내와 이심전심으로 공유된 개의 슬픈 눈빛은 아내의 표현대로 평생 보지 못했던 간절함과 애절함이 묻어있어 내일 다시 방문할 생각을 접고 대신 경사가 끝나는 도로 정상 부근의 마을 입구에서 차를 세워 당장 먹이를 구할 방법을 강구 하였으나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곳은 10여 킬로미터 정도를 가야 하는 관계로 속수무책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트렁크와 뒷좌석을 뒤지던 아내가 찾아낸 아이들에게 줄 간식용 오징어포와 삼다수 생수 두 병 및 먹다 남은 목캔디 캔을 가지고 차를 돌려 오던 방향으로 가다가 차 한 대가 겨우 통과할 정도의 농로 입구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와 앉아있던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면서 일어섰다. 두려움과 위험을 무릅쓰고 아내가 물통 대용으로 가져온 목캔디 캔에 부어준 두 병의 물과 오징어포를 단숨에 먹어 치웠다. 상당한 기간을 굶주린 듯 갈비뼈가 앙상한 슬픈 눈빛의 누렁이는 겁이 많아 반대로 우리를 경계하였다.
그날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화사한 사월의 햇살을 머금은 달창저수지의 푸른 물빛을 배경으로 붉어진 눈시울을 한 아내의 옆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어여뻐서 누렁이를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하였고,
다음 날, 아내가 손수 삶은 감자와 함께 줄 사료를 사기 위해 수소문 끝에 현풍읍 소재 펫마트 테크노폴리스점에 들렀다. 개를 비롯한 애완용 동물을 키워보지 못한 우리는 적잖이 놀랐다. 왜냐하면 한 끼 사료 비용이 점심값과 비슷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누렁이를 만나지 못하면 사료의 반품을 약속한 사장님은 딱한 사정을 듣고 덤으로 한 봉지를 더 주어 오랜만에 세상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제 그 자리에 꼭 있을 것 같던 누렁이는 없었다. 인근 동네 입구에서 밭일 중이던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개의 주인은 확실히 모르지만 돌아다니는 개를 본 적은 있다고 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과 함께 인근 야산에서 평소 아내가 즐겨 하는 야생화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사료를 반품하는 대신 누렁이를 위해 두고 갈 양으로 길모퉁이를 도는 순간 조수석 아내의 환호 속으로 저 멀리 누렁이가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차량의 주차가 여의치 않았던 어제의 기억을 상기하고 누렁이를 지난 백 미터 지점의 안전한 마을 어귀에 차를 두고 걸어서 아내와 함께 그 자리에 갔지만 누렁이가 사라져 버렸다. 대신 두 차례의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니 어제 미처 보지 못한 주변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래된 많은 창문틀 더미 옆에서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면서 서 있을 뿐 어제와는 다르게 불러도 오지는 않았다. 기념인증 샷을 찍으려는 카메라를 보고 겁에 질려 슬그머니 사라진 누렁이가 먹을 수 있도록 어제 그 자리에 사료를 두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아쉬움이나 야속함보다는 홀가분한 안도감이 두서없이 불러대는 아내의 동요 메들리 속에 배여 있었다. 왜냐하면 누렁이가 집 밖인 길가에 앉아있었던 이유가 우리와의 재회를 위함이라는 즐거운 상상과 사연이야 어떻든 누렁이의 거처를 아는 이상 다시 만날 수 있는 기약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여정인 낙동강 다리 건너 아득한 고령 딸기밭까지 가는 내내 아내의 노래는 계속되었고, 앙증맞은 양 볼과 입을 오물거리며 토끼처럼 딸기를 먹을, 세 살, 다섯 살 외손녀의 모습 속으로 슬픈 개의 눈빛은 녹아내리고 있었다.
달빛이 고이는 호수, 달창저수지
달창저수지는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상남도 창녕군과 연접해 있으며, 이름은 두 지역의 첫 글자를 합성한 것이다. 주변 마을과 잘 어우러져 사계절 정감이 넘쳐나 차라리 '달의 창'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저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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