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6, 2022

대구에 흐르는 현자의 눈물 | 조갑제의 박정희 대통령 동상

글 머리에

일부에서 조갑제 선생을 보수논객으로 치부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의 논리는 보수가 추구하는 이념과 상통할 뿐, 진영에 치우친 치졸한 탐닉의 소치가 아니다. 객관적인 혜안의 과정에서, 한국의 정체성 유지에 효율적인 정권 주체의 거명이나 이념의 설파를 편견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즉, 객관적 진실과 진리는 진영을 초월하는 유일한 것으로, 내로남불과 같은 고질적인 성향에 대한 다중의 오해와 답습을 지양할 수단으로 발로되는, 소명 의식이 충만한 논객의 예지를 오해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그의 관점 변화도, 전향이 아닌 각고의 노력으로 파헤쳐낸 실체적 진실에 기인한 과감한 결단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조갑제 선생의 논리는 아전인수와 무관한 객관적인 현자의 세계관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자초한 암울한 시대의 대표적인 현자, 조갑제 선생을 통한 박정희 대통령 동상 건립의 필요성을 알아본다.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은 객관에 입각한 실체적 진실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열거와 설명이 필요 없으나, 수혜자이자 평가 주체인 한국민의 정서 파악 상 간략한 소개가 불가피하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만남은 1960년도 초반, 6.25 전쟁 당시 폭파되어 구국의 다리로 불리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의 낙동강 인도교 근처에서다. 당시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유일한 1번 국도를 잇는 낙동강 인도교를 서울 방향에서 건너, 전국 순회를 위한 50여 대의 수행단 차량과 더불어 왜관읍에 입성한 대통령 일행의 모습은, 초등학교 저학년인 필자에게 실로 장관이었다. 당시 전국적인 차량의 대수가 3만여 대에 불과하고, 칠곡군의 경우 경운기 수준의 택시 2대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수십 년이 지난 2021년의 지금에 생각하면 일국의 원수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가난했던 나라의 설움이 북받친다.
오늘날 아파트 경비실 수준에도 못 미치나, 당시에는 왜관읍의 최고 건물인 농촌지도소에 가기 위해, 선두에 있던 군용 지프에서 특유의 선글라스와 군용 점퍼 차림으로 내린 대통령의 온몸이, 비포장도로의 흙먼지로 온통 뒤덮여 하얗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기 때문이다.

산업화

당시의 정황을 피력한 어설픈 나의 글이 아니라도, 눈물 어린 월남파병 등 겨우 마련한 기틀로, 국토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한 대규모 산업시설을 확충하여,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한 성장의 탄력이 지금까지 지속되는 괄목상대의 발전양상과 박정희 대통령은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필자의 동시대 사람들은 실감할 것이나, 문제는 빛나는 오늘날의 토대가 되는 산업화 시대의 애환에 묘연한 민주화 세대들은 차치하더라도, 생방송 TV프로에서 6.25 전쟁을 북침으로 호도한 늙은 여변호사와 같은 종북 무리에 대한 대안이 현 체제하에서는 없다는 점이다.

민주화와 내로남불

두 차례 정권교체로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어져 오던 성장의 맥락은 전무후무한 내로남불 악재를 만나 와해의 갈림길에 선지도 이미 오래다, 정점에 있는 조국 사태는 자식의 교육에 관한 한, 민족의 동병상련으로 이해의 여지가 다분하여 사과와 반성으로 조기 수습이 가능하였으나, 솔선하여 구태로 치부하며 악착같은 척결을 주장하던 것과는 달리, 상습적인 교묘한 자행으로 탄로된 위선의 극치가 우리 민족의 대표적 정체성인 정직과 권선징악에 정면으로 대치됨에도 불구하고, 견강부회로 일관된 부단하고 끈질긴 축조발명으로, 치유가 가능한 일시적 사회병리가 아닌 고질적 성향으로 낙인되어 돌이킬 수 없는 형국이 되었다. 성찰되지 못하는 내로남불의 행각은 사이코패스이거나 소시오패스의 전 단계로 보아도 무방하다.
망국을 자초했던 사분오열의 무능과 무심 및 종북을 애국으로 포장하기 위해 토착 왜구라는 무고를 남발하여 반일을 선동하고 있다. 잔인한 사자의 사냥을 욕하지 못하는 미묘하고 복잡한 역지사지의 메커니즘 이해가 필요하다. 만일 한반도가 쉴 틈 없는 지진으로 고통받았다면 만주에 대한 세종대왕의 생각은 어떠하였을까? 한국 강점에 대한 일본인의 내로남불은 한 한국 사람의 일본 방문 일화가 적합하다.
일본 동경을 방문한 한국인이 황궁의 잔디밭에 풀 뽑는 광경을 보고 특유의 관심사인 하루 일당을 묻자 ‘우리의 천황이 사시는 곳인데 왜 일당을 받아야 하나요’라는 일본인의 자부심 넘친 거침없는 대답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동방예의지국, 동방의 등불, 착한 백의민족과 같은 수식어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의 미덕이다. 사뿐히 즈려밟고 갈꽃은커녕 나를 버리고 가면 발병 나기를 학수고대하는 아리랑 근성이 타의에 의해 잠재되어 수 천 년 동안 걸친 압박과 고초로 응고된 피가 자유라는 미명으로 무분별하게 용솟음쳐 분출되는 숨겨진 또 다른 우리의 정체성으로 오해받을 것 같아 두렵다.
진로변경으로 차로에 들어온 차가 고맙다는 표시로 비상등을 켜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법적으로 보장되는 운전자의 특권을 고맙게 여기는 것은 그만큼 차로변경이 어렵다는 뜻이다. 정당한 차로변경 허용은커녕 앞차의 허용까지 간섭하고, 정체 시 횡단보도와 교차로 꼬리 물기 종용은 물론 녹색신호 출발 시 자신의 패턴과 다르면 마구 경적을 울려대는 사례의 급증과 SNS를 통한 중우의 폐단은 졸속한 민주화의 예측된 일시적 사회병리로, 내로남불처럼 정체화되기 전에 교정하는 것이 급선무다. 비록 요원하지만 말살된 교권의 부흥과 강화를 통한 교육만이 해법으로 보인다.

마치며

세계의 곳곳에 있는 많은 동상을 보면 동상의 주인공과 업적을 몰라도 왠지 모를 숙연함과 존경심이 든다. 아마도 동상을 고마움의 징표로 간직하고 지침으로 삼고자 하는 진솔하고 긍정적인 건립 의지 때문으로 풀이된다. 온갖 빌미를 동원하여 비방과 폄훼로 일관하는 우리와 확연히 다르다.
박정희 대통령 동상 건립을 위해 대구를 적신 조갑제 선생의 눈물은 헐벗고 암울한 시대의 종식을 위해 열정을 다한 지도자의 기념을 매체로 하여, 잊고 있었던 우리의 본질을 되찾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주도했던 경상도의 뚝심과 의리의 본산인 대구가 중심이 되는 것은, 현자의 눈물처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