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 2025

문창후 최치원 | 시공을 초월한 현자 | 신선이 된 경주최씨 시조

경주(慶州)최씨의 시조인 문창후(文昌候)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857년(헌안왕)에 금성 사량부(경주시)에서 탄생한 희대의 문장가이자 현자입니다. 12세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7년만인 18세에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한 뒤 관직 생활을 하다가 29세에 신라로 귀국할 때까지 「토황소격문」등으로 중국 천하에 명성을 떨친 귀재입니다.

귀국 후 몰락 일로에 있는 신라의 부흥을 위한 시정개혁과 문란한 정치 쇄신을 위한 시무책 상소로 집권 세력(진골)의 배척을 받고 외로운 구름처럼 방랑과 은거 생활을 하였습니다.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천재"라고 회자되는 말이 무색하게 유교·불교·노장사상을 아우르는 사상으로 점철된 선생의 글들은 세상의 영원한 빛이 되었습니다.

중국과 대한민국 일원에 산재하는 빛나는 예지의 발자취를 혼탁한 이 시대의 소중한 빛 삼아 후손의 한사람으로 재조명합니다. 특히 경주최씨 문중 사람에게 자부와 각성의 계기는 물론 세상의 거울이 되는 지침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방대한 업적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합니다.

문창후(文昌候)의 뜻과 유래

문창후는 1020년 고려왕 현종이 최치원선생에게 추시한 시호(諡號)입니다. 문장의 귀재를 뜻하는 문창(文昌)과 오등작 중 두 번째인 후(候)가 결합한 작위의 이름입니다.

시호(諡號)는 덕망과 학식이 특출한 인물에게 국가가 사후에 내려주는(추시) 특별한 이름입니다. 오등작은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의 5단계로 구성됩니다.

현자의 여정

당나라 유학

신라의 신분 계급은 왕족에게 해당하는 골품제도(성골, 진골)와 일반인에 해당하는 두품제도가 있습니다. 6품에서 1품 순으로 구성되는 두품제도의 최상위인 6두품은 신라의 여러 씨족장 후예들이나 신라에 정복된 작은 나라들의 지배층 후손들로 구성됩니다. 규정상 주요 관청의 장관이나 군부대의 지휘관이 불가한 제약이 6두품 출신인 최치원(崔致遠)선생이 원효(元曉)대사와 더불어 학자·종교가 또는 사상가가 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선생께서 당나라의 외국인들을 위한 과거시험인 빈공과에 응시하고 장원급제한 사실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관직 경력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사

아찬

부성군 태수

천령군 태수

주요 저술

계원필경

법장화상전

사산비명

토황소격문

추모 유적

중국 기념관

중국 최치원 기념관 (Cui Zhiyuan Memorial Hall)은 중국 장쑤성 양저우에 있습니다. 천여 년 전 이곳에서 관직을 지낸 최치원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 정부의 승인으로 건립한 최초의 유명외국인 기념관입니다.

최치원 문학관

최치원 문학관은 최치원 선생이 전국 유람 중 일시 체류하였던 의성에서 고운사 가운루와 우화루를 신축하는 등으로 의성 지방 불교문화를 증진한 덕망과 더불어 학문과 사상을 기리기 위해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길 241에 의성군이 설립하였습니다.

사우와 서원

조선 시대 유교 성현(聖賢)에 대한 제향 장소인 사우(祠宇)/사당은 독립적이거나, 청소년 사설 교육기관인 서원에 공존합니다. 최치원 선생의 신주나 영정을 모신 24곳의 장소가 전국적으로 분포해 있습니다.

정읍 무성서원, 경주 서악서원, 군산 염의서원・현충단・옥산서원, 진주 남악서원, 김제 벽성서원, 함양 백연서원, 서산 부성사, 울진 아산영당, 서천 도충사, 순창 지산사, 광주 지산재, 대구 문창공영당, 포천 청성사, 하동 운암영당, 청도 학남서원, 안동 용강서원, 군산 문창서원, 창원 두곡서원, 합천 가야서당, 익산 단동사, 영덕 모운사, 대구 대곡영각

석각

해운대 지명이 유래된 ‘해운대 석각’을 비롯한 32개의 석각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습니다.

영정

크게 신선풍과 문인풍의 두 가지 표현 스타일로 분류되는 19개의 영정이 사우나 서원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에필로그

지금까지 미진한 이 글을 읽으셨다면 문창후 선생을 존경하는 분이거나, 경주최씨 후손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차제에 평화와 평등으로 화합과 소통을 통해 이상사회를 꿈꾸신 현자의 소망을 본받아 혼탁한 세상의 정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경주최씨 후손들은 자랑스러운 조상님의 빛나는 의로움을 후손들이 실천하도록 소개한 업적의 폭넓은 공유를 기대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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